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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칼럼

하나님의교회 부활절 날짜 논쟁

라임사랑 2018. 4. 2. 23:54

하나님의교회 바이블칼럼

하나님의교회 부활절 논쟁

 

2018년 부활절 날짜는 4월 1일 일요일이다.

이른봄, 일요일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부활절이 대체로 동일한 경우가 많지만

 천주교, 개신교에서 가르치는 날짜 산정방식은 성경의 가르침은 아니다.

성경의 부활절 날짜는 ‘무교절 후에 오는 안식일 다음 날’, 즉 무교절 후 첫 일요일이다.

그러나 천주교와 개신교에서는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 정한

 ‘춘분 후에 오는 만월(보름) 후 첫 일요일’이라고 가르친다.

간혹 1~2주씩 차이가 나는 건 이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부활절 날짜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교회의 큰 절기 중 하나다.

성경을 살펴보면 모든 절기의 날짜를 확인할 수 있다.

 

정하여 놓은 때를 따라, 너희가 거룩한 모임을 열고 주 앞에서 지켜야 할 절기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달 열나흗날 해 질 무렵에는 주의 유월절을 지켜야 하고, 같은 달 보름에는 주의 무교절을 지켜야 하는데, … 너희가 거둔 첫 곡식단을 제사장에게 가져가야 한다. … 제사장은 그것을 안식일 다음 날 흔들어서 바쳐야 한다. (레위기 23:4~11,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정해놓은 때를 따라 절기들을 지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성력 1월 14일 해 질 무렵에는 유월절을, 15일에는 무교절을 지키고, 이후 돌아온 안식일 다음 날에는 첫 곡식단(첫 열매)을 바치라고 하셨다. 유월절과 무교절, 부활절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구약의 절기를 따라 예언을 성취하셨다. 유월절 양의 실체로 오신 예수님께서 잡히신 건 성력 1월 14일 유월절 밤이었다(누가복음 22:15, 고린도전서 11:23~25). 그리고 다음 날 무교절에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다. 그날은 오늘날의 요일상 금요일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신 예언대로 3일 후인 일요일에 부활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한 초실절의 예언을 성취하신 것이다(고린도전서 15:20). 이렇듯 성경의 부활절 날짜는 ‘무교절 후 첫 일요일’로, 유월절과 무교절을 기준으로 한다.

 

 

 

 

사도들이 지킨 부활절

초대교회 사도들은 ‘무교절 후 안식 후 첫날(일요일)’에 떡을 먹으며 부활절을 지켰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축사하신 떡을 떼어주시며 본보여주신 대로다.

‘사도 중의 사도’라 일컬을 만한 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세 차례에 걸쳐 동유럽을 오가며 전도 여행을 했다. 도보, 배편을 이용한 전도 여정은 늘 위험이 뒤따랐고 매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바울은 하나님의 절기에 맞춰 일정을 조절해야 했고 절기가 다가오면 발걸음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한 사도행전 20장의 기록이 이를 증명해준다. 무교절과 부활절을 지킨 행적도 같은 장에 기록돼 있다.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사도행전 20:6~7)

바울 일행은 무교절 후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 드로아에서 맞은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며 부활절을 지켰다. ‘무교절 후에 온 안식 후 첫날’은 부활절이 틀림없다.

 

 

 

 

부활절 날짜 논쟁

 

그런데 왜 난데없이 부활절을 ‘춘분 후에 오는 만월 후 첫 일요일’에 지키게 된 것일까.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지 약 300년 후의 일이다. AD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니케아(지금의 터키 이즈니크)에서 종교회의를 소집했다. 예루살렘교회와 로마교회 간의 해묵은 갈등을 종식시키자는 명분에서였다.

 

유대인의 제1차 반란(AD 70년)과 제2차 반란(AD 132~135년) 이후, 로마제국의 핍박은 더욱 심해졌고 유대교는 마침내 불법 종교로 낙인찍혔다. 로마제국이 유대교와 기독교를 확실하게 구분할 리 만무했기에, 유대교인들과 동일한 날에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키는 기독교인들은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로마교회는 오해와 핍박에서 벗어나고자 로마인들이 가장 많이 믿고 있던 미트라교의 예배일인 일요일을 안식일 대신 도입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유월절 성찬을 일요일에 하자는 시도를 하기에 이른다. 이것 역시 미트라교의 축제일로 대체한 것이었다. 봄의 여신 이스터(Easter)의 축일인데, 부활절이 이스터라고 불리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예수의 부활이 일 년 중 봄에 있었기 때문에 4세기의 교회가 이교도 봄 축제를 그리스도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대영 백과사전은 이 침투에 관하여 “그리스도교는 … 많은 이교 의식들과 봄 축제 관습들을 그리스도의 큰 축제일에 합병시켰다”고 말한다.

– 로마 카톨릭주의의 정체, 노아와방주 –

 

 

 

 

이 때문에 유월절에 성찬을 해야 한다는 예루살렘교회와 큰 충돌을 빚는다. 이른바 ‘부활절 논쟁’인데, 유월절에 대한 논쟁이기도 해서 헬라어로 유월절을 뜻하는 ‘파스카(πασχα) 논쟁’이라고도 한다. 당시 로마교회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사람은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서머나교회 감독 폴리캅(폴리카르프스)을 비롯하여 에베소의 감독 폴리크라테스 등이었고, 이에 맞선 로마교회의 감독은 식스토 1세(식스투스), 아니체토(아니케투스), 빅토르 1세(빅터)로 이어졌다. 다음은 폴리크라테스가 빅토르 1세에게 보낸 서신 내용의 일부다.


우리는 진정 올바르게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 열두 사도의 한 사람인 빌립과 … 순교자였던 요한도 에베소에 묻혀 있습니다. … 이 사람들은 모두 조금도 빗나가지 않고 신앙의 규칙을 따르면서 복음에 따라 14일을 유월절로 지켰습니다.

–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은성

 

그러나 결국 325년 로마 황제의 주재로 개최된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유월절은 폐지하고, 로마교회의 방식대로 부활절만 ‘춘분 후에 오는 만월 후 첫 일요일’에 지키기로 결정됐다. 이후 로마 황제는 예루살렘교회를 중심으로 한 동방 교회 감독들에게 서한을 보내 “동방에 있는 교회들도 유대인과 함께하지 말고, 로마교회와 같은 날 예배하라.”고 명령했다.

 

춘분 후에 오는 만월 후 첫 일요일’이라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부활절 날짜 산정방식은 이렇게 탄생됐다. 성경에 엄연히 하나님께서 정하신 부활절 날짜가 명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모여 바꿔버린 것이다. 강조하건대, 성경이 가르치는 부활절 날짜는 ‘무교절 후 첫 일요일’이다.

출처 -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 부활절!

성경대로 지키는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성경대로 부활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부활절 날짜는 '춘분 후에 오는 만월 후 첫 일요일'이 아니라

무교절 후 안식 후 첫날(일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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